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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교육자료

[교육자료] 교량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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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교량의 인식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공유함으로써 좋은 정보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교량의 개요, 교량공학의 발전 등 교량의 인식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합니다. 

교량의 인식 교육자료 표지 (사진:YangDaddy)

교량의개요

인류는 유사이래 자연에 순응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생활을 영위하여 왔다. 최초의 인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또는 쓰러진 나무를 이용하여 계곡이나 하천을 이동하고, 식량등을 운반하였으나, 통행에 장애가 되는 강, 하천, 계곡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교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인간들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운반하는 것에 항상 관심을 가져왔다. 초기에는 강가를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물이 갖는 지역적인 차단성을 극복하고, 이웃지역과의 연결을 위하여 가급적 수로(바다, , 호수등)를 이용하였으며, 오늘날에도 물건을 운반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배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배에 의한 운송은 원하는 도착지에 따라 제한을 받을 뿐만 아니라, 수로 자체도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육상운송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강 및 깊은 협곡을 횡단하는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발상에서 출발하여 쉽고 빠른 육상수송을 위하여 교량을 가설하게 된다.

교량이란 도로, 철도, 수로 등의 운송로 상에 장애가 되는 하천, 계곡, , 호수, 해안, 해협 등을 건너거나, 또 다른 도로, 철도, 가옥, 농경지, 시가지 등을 통과 할 목적으로 건설되는 구조물을 총칭할 수 있다. 교량은 도로, 철도의 계획노선성의 장애물을 통과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나, 인간의 생활이 풍족하여지면서 교량은 단순한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만 갖는 것이 아니라, 인류환경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상이 되었고, 한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문화유산이며, 아름다운 조형물로서 심미적, 환경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교량을 똑같이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량에 대한 연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일반 시민들은 교량을 이용하고, 엔지니어는 교량을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를 한다. 그러나 교량은 한 순간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공학적 전문지식, 경험, 기예를 필요로 한다. 디시 말하면 교량의 형식선정, 작용하중의 해석, 상세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의 과정에서 교량기술자들은 고도의 기술, 경험 및 기예를 필요로 하고, 첨단 구조공학에 바탕을 둔 설계, 해석, 분석이론과 설계, 시공 실무가 필요하게 된다.

교량공학의 발전

근대 교량공학의 발전은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 수많은 주철 트러스교, 주철 이치교와 곳이은 연철 장대교량의 건설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이에 따른 유럽과 미국에서의 교량구조형식해석법가설기술의 발전등이 현대 교량공학의 초석이 되었다. 그후, 19세기말과 20세기초부터 강교량과 철근콘크리트 교량의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현대 교량공학은 비로소 오늘날 공학기술의 원초적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교량공학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교량의 붕괴참사를 겪으면서 그때마다 한 단계씩 점프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20세기초부터 2차대전을 전후하여 겁 없이 무분별하게 제작가설되던 수많은 용접을 이용한 잠수함선박강교들의 취성피로파괴로 인한 침몰붕괴로 파괴역학이란 이론이 출몰하게 되었다.

60년대의 호주의 Kings(1962) 등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교량들의 피로파괴에 의한 붕괴는 고강도 강재의 사용과 더불어 피로설계규준의 발전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캐나다의 퀘벡교(1917)의 가설도중 압축재의 좌굴에 의한 파괴는 압축재의 안정설계기준의 발전을 가져왔다.

장대교량의 붕괴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1940년에 발생한 Tacoma Narrows교의 돌풍에 의한 붕괴사건이다. 19m/sec 정도의 돌풍이 일으킨 비틀림플러트(Torsional flutter)에 의한 현수교의 어이없는 붕괴는 그 이후 모든 장대교량은 공기역학적 안정설계를 위하여 철저한 내풍해석풍동시험 등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고사례와 관련하여 구조공학 기술의 발전을 언급하자면 한이 없지만, 그만큼 선진국에서는 실패와 붕괴사례를 기술발전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실패와 사고를 덮어두고 기록을 없애기에 급급한 우리나라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풍토를 엿볼 수 있고 왜 우리 건설기술이 선진화되지 못하는 가를 깨닫게 해주는 교훈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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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교량의 사고들을 정리한 표

성수대교 붕괴사건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한 사건입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공권력을 이용하여 사익을 위해 추구하여 왔던 한국사회 부정부패가 그 사건의 배경이라고 합니다. 건설사의 부실공사와 감리담당 공무원의 부실감사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사건이며, 정부의 안전검사 미흡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출근하거나 등교하고 있는 시민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하였고 그 가운데 32명이 사망하였습니다.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에 준공된 성수대교가 1994년 10월 붕괴합니다. 이 붕괴사건으로 인하여 건설분야에 만연되어 있던 부실공사와 부실감리, 안전검사 미흡이 집중적으로 폭로되었습니다. 사고 책임을 물어 그 당시 서울시장이였던 이원종 시장이 사임하였습니다. 이후 우명규 시장을 거쳐 최병렬 시장이 취임하면서 부실공사 대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성수대교의 무너지지 않은 부분을 보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토목학계의 의견도 있었지만 다리를 완전히 새로이 건설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성수대교붕괴사건이 있은 지 3년만인 1997년 7월에 새로운 성수대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되어 1천여명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대형사고입니다. 설계 시에 대단지 상가로 설계되었던 것이 정밀한 구조진단 없이 백화점으로 변경되어 1989년 완공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무리한 확장공사가 수시로 진행되었습니다. 붕괴 조짐이 있었지만 백화점은 응급조치로 대응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설계/시공/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였습니다. 1년 전의 성수대교 붕괴사건(1004년 10월 21일)과 함께 압축성장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지상5층, 지하4층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수개월 전부터 균열 등 붕괴조짐이 있었습니다. 1995년 6월 29일 오전에 5층에서 심각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때 1천여명 이상의 고객들과 종업원들이 건물 내에 있었습니다. 당일 오후 6시 직전에 5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건물은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20여초만에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신행주대교 붕괴사건

1992년 7월 31일 오후 6시 55분 서울 강서구 개화동과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을 잇는 신행주대교 공사장에서 2개의 주탑 중 하나가 부러지고 교각과 상판 800여m가 내려앉아 붕괴된 사건입니다. 마침 작업이 끝난 시간이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 다리는 기존 행주대교의 교통 체증을 덜기 위해 1987년부터 정부가 벽산건설에 수주, 170억원을 들여 길이 1,460m, 폭 14.5m 왕복 4차로로 건설 중이던 2개의 Y자형 주탑을 가진 사장교입니다. 상판작업 60~70m간격을 남겨 마지막 연결 공사를 하던 중이였습니다. 

대안입찰 방식으로 벽산건설에 맡겨진 사장교 형식은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공법으로, 기술 수준의 차이 때문에 안전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외국인 기술자에게 공정을 전적으로 의존해 왔습니다. 건설부는 1992년 5월 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와 공동으로 안전진단을 실시했으나, 이때도 공법이나 구조물 상태에 관하여는 거론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고의 직접원인은 주탑과 상판 사이의 인장작업 전 임시로 설치한 가교각 2개가 상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붕괴되면서 강북쪽을 향해 10개의 교각이 차례로 무너지고 강선으로 연결된 상판 41개가 차례로 강물로 끌려들어가면서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붕괴된 교각과 상판은 물론 상판 위에 쌓였던 수십억원의 자재, 장비도 수장되고, 재건설에 4년여의 기간이 걸려 일산, 중동 등 신도시 건설에 맞춘 수도권 교통망 확충계획에 차질을 가져왔습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의 중앙로역 구내에서 50대 중반의 남성이 저지른 방화로 총 12량의 지하철 객차가 불에 타고 192명의 승객이 사망한 대형참사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에 발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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